[에드데이]별이 피어나는 곳에서 만나
오늘, 별이 피어나는 곳에서 만나.
이는 평범함을 녹여놓은 반복적인 하루를 끝낼 수많은 행동 중 유일한 마침표로, 우리가 알고 지내온 어느 하루부터 절대 잊지 않고 행하던 당연한 의례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책을 정리하고 있던 데이지의 손에 몇 번 반듯하게 접힌 쪽지 하나가 쥐어진 일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주인을 닮아 유려한 필체로 쓰인 그 말은 단순하고 명료하나 다른 때보다 혀가 아려올 만큼 특별하다. 데이지는 마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을 삼켜버린 어린 날의 악동처럼, 책을 끌어안은 손 한 편에 쪽지를 고이 쥔 채로 학생들 틈바구니 사이를 걸음해 길고 긴 복도를 유유히 빠져나가며 기대감을 키운다. 점점이 퍼져나가는 상기된 기분의 선한 빨강은 마치 해가 지는 하늘쪽의 흐트러지는 노을색. 인적이 조금씩 드물어지는 길로 발을 옮기는 데이지의 다정한 뺨도 그와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을 것이라, 아무도 보지 못했기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오늘의 특별함은 오롯이 데이지만의 것. 다른 아이들이 제게 건넨 당연한 인사치레의 축하도 아직 건네지 않은 에드워드지만, 그는 이미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데이지는 제 하나뿐인 오랜 소꿉친구의 생각을 지레짐작하여 본다. 세상 어디든 지지 않고 하루 종일 반짝이는 별이 떠있는 지구의 많고 많은 장소들 중에서 너는 특별한 날이 찾아오는 때면 기숙사 휴게실을 두고서 별이 태어나는 태초의 곳을 찾아 제게 손 내밀곤 하였으니. 자신들이 지내고 있는 곳은 서쪽이나 그곳이 가장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는 별을 사랑하는 자신을 위해 기꺼이 동쪽까지 걸음 해주곤 했다. 제 기숙사가 위치한, 별이 귀로하는 서쪽의 하늘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음은 분명했으나, 피어나는 것과 져버리는 것의 차이는 극명했으니.
제 호기심의 대가로 묵직한 책이 손에 한아름 들렸으나 데이지의 걸음은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보다도 가볍다. 하루라도 밤이 찾아와 하나의 우주가 담긴 네 푸른 눈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따스한 파랑이다.
파랑에서 별은 뜨겁게 탄생한다. 고요의 숲 한가운데에서 둘은 서로를 발견하자 소리 하나 없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서로의 존재를 눈에 되새긴다. 데이지는 차분하게, 그러나 들뜬 마음으로 걸음을 옮겨 에드워드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헛기침 한 번, 호흡 한 번. 에드워드! 숲에서 새어나가지 않으나 침묵에서는 분명한 존재일 정도의 목소리로 심장이 간지러운 이름을 부르면서. 너는 여전히 웃고, 별은 찬란히 빛난다. 감히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태어나는 아득하게 찬란한 밤. 둘은 묘한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서서 서로를 눈에 담아 놓아주고 싶지 않은 듯 눈꼬리를 휘어 웃는다. 생일 축하해, 데이지. 하루의 안부를 묻기 전에 전해주고 싶었던 말. 에드워드는 약간 상기된 뺨이 어둠에서 빛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제 말에 입꼬리를 올린 네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여긴다. 내려올 줄 모르는 다정한 너의 미소의 값으로 자신은 준비해온 것들을 네게 조심스러운 손길로 건네준다. 하얀색 데이지가 별처럼 피어난 꽃다발, 보드라이 흘러내리는 너의 머리칼을 닮은 사랑스러운 곰인형, 언젠가 네가 좋아하는 문장이 담겨 있는 글이라 말했던 책 한 권. 네가 입 안에 담을 때면 달콤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개구리 초콜릿과 젤리. 마지막으로 데이지가 가장 사랑하고 있을, 바다에 쏟아버린 보석과 같은 별들. 에드워드는 데이지에게 닿고 싶어하는 마음 중 유일하게 지금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제 심장소리만은 닿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바싹 마른 숨을 삼킨다. 너의 마음에 들었을까. 네 웃음이 별보다도 더 환해지기를 바라는 순간. 퀴디치 경기를 할 때에도 느껴지지 않는 긴장감. 선물들을 받고 네가 행복해하기를 기다리는 단 몇 초들이 왜 이렇게 무거운 시간들로만 느껴지는지. 풀들이 지저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붉은 순간.
고마워, 에드워드! 너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얼굴로 웃는다. 마치 봄날에 한아름 피어난 데이지 꽃의 보드라움처럼. 네가 부르는 익숙한 제 이름 하나로 이렇게 세상이 뒤바뀔 수 있는 일인지. 에드워드는 사랑하는 이를 닮아 웃고, 데이지는 그의 다정함에 숨길 수 없이 밝게 웃는다. 너의 그 모든 걸 정말로 좋아한다 진솔하게 고하면, 너는 그때도 그렇게 환히 웃어줄까. 에드워드는 사랑하는 친구이기에 생각을 종이비행기로 접고 그저 웃는다. 이제, 산책할까?
"선물은 마음에 들어?"
"응. 늘 기억하고 있네. 내 생일도, 좋아하는 것도."
누구 일인데. 에드워드는 구태여 이를 입에 담지 않는다. 데이지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미 어릴 적부터 전부 꿰차고 있던 그다. 비단 좋아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데이지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그렇기에 매일 같이 손님으로 달이 찾아오는 시간이면 함께 밤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
"별은 따다 주지 못해서 아깝네."
에드워드는 특유의 장난스러운 말로 진실된 생각을 건넨다. 네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선물로 주었는데 별은 그러하지 못했기에. 별까지 따다 네게 주었다면 너는 정말로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 웃었을 텐데. 제 말에 데이지는 늘 그러하듯, 이것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하다 미소지으며 다시금 고맙다고 말한다. 난 이걸로도 엄청 행복해! 그리고 에드가 준 거잖아. 당신이 준 것이라면 그날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삼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둔하고, 나쁜 것일 리가 없으니까. 각자를 눈에 담고 웃음 지은 둘은 이제 별이 가득 뜬 하늘 아래서 축복을 받듯 느긋하게 걸음을 맞추어 걷고, 그날의 하루를 정리하여 교환일기처럼 솔직하게 털어놓아 서로에게서 위안을 삼는 말들을 주고 받는다. 그랬구나. 더욱 가깝고 깊이 알고 싶은 서로의 일들. 데이지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좋아 답지 않은 욕심을 부리고 싶은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너를 사랑한다 말하고 오늘도 좋아한다는 말을 마침표로 삼고 싶은 나날들. 이야기에 파묻혀 시간은 존재가치를 잃어버린다.
별이 조금씩 장난을 치며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 순간. 에드워드는 아쉬운 목소리를 꾹 누르고 별을 눈에 담고 있는 데이지에게 조심스러운 투로 권유한다. 이제 슬슬 들어갈까? 영원이 존재한다면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 그 말에 데이지는 그럴까, 제게 긍정을 표하고 다정하게 걸음을 돌린다. 내일의 우리도 밤하늘을 마주하겠지만, 오늘의 밤하늘은 다시 돌아오지를 않는데. 데이지는 괜스레 걸음을 더 느리게하여 걷는다. 조금이라도 그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욕심에.
잘 자. 무한은 없기에 둘의 걸음이 도달한 곳에서 데이지는 기쁨이 그의 꿈에 방문하기를 바라며 인사한다. 얼른 또 내일의 밤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당신이라는 별에게 진실한 마음을 감춘다. 오늘 즐거웠어. 에드. 그는 인사에 만족하여 따스하게 웃고, 데이지가 먼저 몸을 돌려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눈에 담는다. 그런데 어쩌지. 너에게 오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음에.
데이지. 입에 닿으면 봄이 불어올 것 같은 네 이름을 불러본다. 어쩌지. 말해도 되는 걸까. 네 이름의 무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질지도 모르는 문장 하나를 경솔하게 꺼내어 보여도 괜찮은 걸까. 수백번이라면 수백번이었을 망설임의 순간. 에드워드는 입을 잠시 열었다, 다시금 닫는다. 나는 너의 곁에 오래 있고 싶어서.
생일 축하해. 에드워드는 그저 다시금 웃는다. 파란 하늘. 반짝이는 별. 자신의 래번클로. 나의 유일한 우주이자 하나뿐인 파랑. 데이지. 모두 자신이 사랑하다 못해 입 맞추고 싶은 것들. 에드워드는 오늘도 그에게 좋아한다 고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너는 내 세계이자 유일한 우주이기에. 그 어떤 하늘이 너보다 광활하고 그 어떤 별이 너의 맑은 눈보다 빛을 낸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너의 세계에 누구보다 오래 머무르고 싶어. 그곳이 낙원이 아니라 할지라도 영원히 그곳에서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고마워, 에드. 좋아한다는 말 대신 우리가 늘 그러했듯, 서로를 향한 존경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나의 밤하늘. 언젠가 당신이라는 별에 닿을 수 있었으면.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별은 너니까. 언젠가의 하루에 너라는 별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마법보다도 경이로울 거야. 파랑으로 가득 번진 생일은 살아온 날들 중 가장 선명하게 아름답다. 그것은 네가 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