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브사이코

[에쿠레이]미련

無下 2016. 9. 28. 15:39



 사무실 안은 답답하고 폐를 괴롭게 만드는 어두운 연기로 가득 차 조금의 틈새도 허용하지 않은 숨 막히도록 밀폐된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 좁은 공간에서 취한 듯 걸음을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남자를 목격한 에쿠보는 사납게 얼굴을 구긴다. 저 새끼 저거 또. 자신도 모르는 새 주먹에 힘이 실린다. 아스팔트의 먼지를 눅눅하게 바닥으로 가라앉히는 서늘한 비와 함께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두들겨 팼으면 소원이 없겠건만. 기분 좋게 홀린 남자가 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에쿠보는 주먹 진 제 손이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얘진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아, 이거 내 몸도 아닌데. 저릿하게 떨려오는 주먹을 풀며 에쿠보는 한참을 망설인다. 분명 자신을 괴로움의 늪에 밀어버리려 하는 짓거리임이 뻔히 보이는데 나는 왜 한 번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건가. 며칠 동안 눌러왔던 것이 오늘 터져버린다. 결국 보슬거리는 비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 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허름한 건물 앞에 선다.


 구질구질한 짓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왜 매번 이렇게 간섭하는 건지. 수없이 많은 해를 살아 온 스스로조차 감정의 변덕을 이해하지 못한다. 에쿠보는 돌덩이가 달린 것 같이 무거운 발을 질질 끌어 느릿하게 계단을 오른다. 사람을 인식하기는 하는 건지 머리 위 주황빛 전등은 힘없이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제 눈을 괴롭힌다. 전부 다 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이 망할 전등도, 레이겐 그 자식도. 에쿠보는 굳게 입을 다문 문의 서늘한 문고리를 돌려 확 잡아당긴다. 역시 공기는, 탁한 담배 연기로 자욱하게 끼어있어 제 숨통을 무겁게 죄여온다.


 레이겐은 마치 그의 존재를 몰랐다는 듯 잠시 놀란 눈을 하곤 밝게 인사한다. 여어, 이 시간에 웬일? 그의 경박한 목소리와 함께 담배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제 주위를 맴돈다. 지금 제 손에 잡혀 있는 어깨를 힘으로 억눌러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누르며 숨을 골라낸다. 저 놈의 담배. 예전부터 끝나고 나면 줄곧 피워댔지. 뭐가 그렇게 공허해서. 레이겐은 얼굴에 비릿한 미소를 한가득 띤 채로 흐릿하게 에쿠보를 마주한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사이 담배 냄새와 함께 희미한 밤꽃 향기가 제 코를 감돌아 저를 미치게 만든다. 또 어떤 새끼야. 독하기도 하네. 내가 여기 왜 온 걸까. 미쳤지 아주. 이제 자신은 관여할 자격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보고 있으면 화가 끓어올라서 참을 수가 없다. 매일 낚여 오는 자신도 자신이지만 매일 이 짓으로 이 몸을 죽이려 드는 너도 문제 있는 거 아니냐. 나 어차피 악령이라 더 이상 죽지도 못하는데. 하, 그래.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지.


 “...언제까지 이 짓 하고 다닐 거냐.”


 목소리가 갈라져 활처럼 날아간다. 제 말에 레이겐은 낄낄 비릿하게 웃는다. 가느다란 손가락에는 여전히 담배가 걸쳐진 채. 손가락을 좀먹을 듯 점점 가까워지는 까만 필터에 에쿠보는 거칠게 손을 뻗어 담배를 빼앗아든다. 손바닥의 신경으로 타들어가는 뜨거운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사탕을 뺏긴 아이처럼 제 손에서 사라져버린 담배에 레이겐은 입을 비죽이 내밀고 발목이 훤히 드러난 다리를 두 팔로 감싸 모은다. 시선이 향한 발목에도 붉은 자국이 여럿 새겨져있다. 취미 한 번 고약하군. 에쿠보가 손 안의 담배를 짓이기는 것을 뚱한 표정으로 보던 레이겐이 느릿하게 입을 열어 말한다.


 “별로 상관없지 않아? 이 천재 영능력자 레이겐님이 몸을 어떻게 굴리고 다니든지? 이제 연인이라는, 서로를 잡아 둘 구실도 없잖아? 그냥 몰랐던 사이처럼 서로 신경 끄고 살면 되는 거라고. 너도 악령답게 이제 속세에 미련 버리고 말이야.”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며 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제 귀를 홀리나 표정은 여전히 가볍다. 제 목으로 넘어오는 그의 흔적 가득한 팔에 에쿠보는 잠시 숨이 멎는다. 레이겐은 아슬아슬하게 제 몸을 걸쳐놓은 채 담배 연기를 깊이 폐 속으로 들이마신다. 불구덩이에 있는 악마 마냥 입에서 퍼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유난히 검게 보인다. 후, 하고 그는 제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턱턱 막혀오는 숨과 흐린 시야 사이로 그의 목에 크게 새겨진 붉은 키스마크가 들어온다. 자신이 유독 집착하던 위치.


 그리고 너도, 아직 나한테 미련이 남아서 그 몸 가지고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그러게 날 버리지 말았어야지. 에쿠보는 다른 이의 온기가 남아 있는 소파 위로 그를 거세게 떠밀어버린다. 그러게. 왜 이 하찮은 존재에게 미련이 남아서 나는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오늘도 이렇게 속아 넘어간다. 자신이 버린, 자신을 원망하는 레이겐이라는 사기꾼 영능력자라는 작자에게.


 에쿠보는 붉은 흔적이 남아 있는 목으로 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