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고 나면, 형은 어떻게 살아갈 거야? 20년이라는 애매한 시간동안 죽음이라는 암울한 소재를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은 적은 없지만 죽음을 제 옆에 앉혀놓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다. 한기가 느껴지는 무릎을 조심스럽게 감싸 반쯤 감긴 무기력한 눈으로 죽음이라는 작은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면 아이는 어딘가 무섭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아닌 어둠의 지평선 너머를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다. 넌 내가 아닌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거니? 곧 너와 입을 맞출 사람은 저 허공이 아니라 나인데 말이야. 쵸로마츠는 얼어붙은 손을 느릿하게 뻗어 그 아이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뺨을 잡아 시선을 맞추려 몸을 돌린다. 가는데 외로운 길 너만이라도 나를 좀 바라봐주렴. 아니면 나는 울다 지쳐 잠이 들어 죽어버릴지도 모른단다. 외로움이라는 벗어나지 못할 끈적끈적하고 깊은 늪에서 나는 숨을 쉬지 못한 채.
죽음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추접스럽게 웃는다. 뺨을 잡고 있던 손이 그 입속으로 들어가 잡아먹힐 것 같다. 갈기갈기 잘려 너덜한 가죽덩어리가 될 것 같은 어쭙잖은 공포에 숨이 살짝 멎는다. 끝없는 어둠속에서 섬뜩한 웃음소리만이 멀리 퍼져나가 제 귓전을 날카롭게 때린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에 굳어버린 손으로 귀를 틀어 막아보지만 사납게 웃고 있는 죽음의 표정에 순간 넋이 나가버린다. 너의, 사랑이라는, 인간은. 조잘거리는 입모양을 눈에 담겨 어지럽게 일렁이며 제 머릿속을 되찾지 못할 정도로 헤집어놓는다. 아니야. 그만. 그만해 줘. 죽음의 시커먼 입을 막으려 손을 뻗어보지만 말은 멈추지 않고 제 핏기 없는 손만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입속으로.
와드득.
식은땀이 이불까지 흥건히 적시고 나서야 쵸로마츠는 헉, 하는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간신히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적막함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이런 날도 있구나. 자신이 형제 중에서 가장 늦게 일어나는 날.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장 먼저 마시며 단정한 옷차림으로 문을 나서는 건, 언제나 게을러빠진 제 형제들을 쓰레기라 부르는 자신이었는데. 익숙지 않은 어색함에 쵸로마츠는 흠뻑 젖어 어두운 색으로 얼룩진 제 잠옷을 훌훌 벗어 세탁기에 고이 집어넣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의 싸늘한 공기가 젖은 몸에 밀착해 한기를 느끼게 만들었다. 제 몸에 어떻게든 들러붙으려는 차가운 기운이 좋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한기에 쵸로마츠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마른 제 팔을 쓸며 벽에 걸린 샤워기를 손에 쥐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수도꼭지를 돌리자 뿌연 김이 욕실에 차기 시작하면서 뜨거운 물이 비처럼 바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이 서린 거울은 흐려진 나머지 제 모습이 투영되지 않는다. 쵸로마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헝클어진 제 머리부터 뜨거운 물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차가움과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천천히 풀리는 편한 느낌에 쵸로마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생 처음 겪어본, 정말 끔찍한 악몽이었다.
죽음이라는 아이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물론 자신의 헛된 상상이 만들어 낸 허구의 존재일 뿐이겠지만 자신의 손을 씹어 삼키던 그 순간은 너무나도 생경해서 지금도 그 검은 덩어리를 떠올리면 서늘한 식은땀이 머리에서 줄줄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런 소름끼치는 꿈을 꿔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따뜻한 물이 온 몸을 적시고 바닥으로 떨어져 사라진다. 쵸로마츠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 젖어버린 땀을 전부 쓸어내렸다. 이 지울 수 없는 찜찜함에 쵸로마츠는 흐려진 거울을 손으로 닦아내어 무기력감이 가득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려 했으나 뜨거운 물에서 끓어오르는 뿌연 김이 재빠르게 거울을 다시 가려버렸다. 손이 허연 김을 쓸어내리며 거울을 타고 힘없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아직도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질 않고 저 멀리서 헤매고 있는 듯 했다. 정신이 얼얼하다.
물이 모든 거품을 다 씻어 내리고 난 후에도 쵸로마츠는 한참동안 물을 맞으며 그 자리에서 뒤엉켜버린 머릿속을 풀어헤치려했다. 제가 죽음에게 건넸던 그 말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스스로도 해석하지 못하는 복잡한 암호 같은 문장에 쵸로마츠는 혼탁해진 머리를 정돈할 길이 없었다. 내가 죽고 나면, 형은. 그 순간 스쳐지나간 붉은색의 강렬함과 눈물이라는 슬픔의 산물. 왜 하필 오소마츠 형일까. 아니 그보다 왜 형이 내 죽음에.
쵸로마츠는 지쳐버린 몸을 느릿하게 끌고 김이 가득 찬 욕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아무도 없어 공허한 공기가 감돌았던 집안에 희미한 체향이 감돌고 있었다. 잠자리에 드는 늦은 시각이면 창문으로 찾아온 그윽한 달빛과 함께 늘 제 옆자리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달콤한 과일 향기에 눈을 감고도 한참을 잠 못 이루던 밤이 한 번씩 있었다. 지금도 그 달콤한 체향이 제 코 끝에 맴돌며 헝클어진 생각을 잠시나마 가라앉게 만들어 주었다. 계단을 통통거리며 올라오는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체향이 점점 가깝게 발걸음을 옮겼고 붉은 후드를 입은 제 형의 모습이 눈에 천천히 담겼다. 쵸로마츠를 발견한 오소마츠는 눈을 초승달처럼 크게 휘며 밝게 웃는 얼굴을 제게 보였다. 쵸로마츠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대충 털어 넘기며 제게 다가오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무기력함의 끝을 찍고 있는 쵸로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을 말한다.
“이제 일어났어?”
“어. 좀.”
“헤에- 우리 부지런한 쵸로마츠씨가 웬일? 하긴 내가 일어나니까 너랑 나빼고 다 일어나긴 했더라. 근데 생각보다 엄청 늦게 일어났네. 벌써 세 시간 전인데.”
오소마츠는 특유의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비꼬는 듯 말한다. 평소라면 톡 쏘는 목소리로 그 악의적인 빈정거림을 날카롭게 지적해야 할 테지만 잡념이 복잡하게 배배 꼬여버린 지금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조차 확실하게 판명내리기 힘든 공기 속에서 쵸로마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단정하게 개켜져 있던 제 와이셔츠를 집어 든다. 이질적인 그의 행동에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제 빈정거림을 무시당한 것에 대한 불쾌감인지. 갑작스럽게 찾아 온 침묵을 누가 먼저 쫓아낼지 예측조차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는 딱딱한 소리만이 공기 중에 퍼진다. 오소마츠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할 말을 찾는 듯 동그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할 말이 없다. 쵸로마츠는 차게 식어가는 수건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소마츠도 그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는 공간 아래에서 말은 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어색함을 차마 참지 못한 오소마츠가 먼저 입을 열어 말한다. 어디, 아픈 건 아니고? 몸을 돌려 바라 본 오소마츠의 얼굴에는 약간의 근심이라는 불안의 표정이 덮어져있다. 쵸로마츠가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자 오소마츠는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헤헤, 웃는다. 글쎄. 형이 정말 나의 사랑이라면. 쵸로마츠는 주름 하나 없는 제 옷매무새를 괜스레 다시 다듬는다.
“아니. 전혀.”
“아.. 그럼 뭐 다행이고...”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장남 너나 잘 챙기시지.”
“헤! 이 국보급 카리스마 레전드는 언제나 멀쩡하니까!”
밝다. 풀이 언제 죽었다고. 쵸로마츠는 가벼이 한숨을 쉬며 이미 오후가 되어버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런 애매한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생각만 드는데. 다시 찾아오는 무기력함에 쵸로마츠는 어쩔 줄 모르고 제 마른 손가락만을 매만졌다. 처음으로 겪어 본 어둠 가득한 공포의 꿈과 익숙지 않은 연속적인 상황들에 쵸로마츠는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제게 찾아올까 두려움을 느낀다. 불길한 예감은 늘 제 인생을 괴롭히듯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한기에 쵸로마츠는 양팔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이 적막함도. 어색함도. 깨어져버린 제 일상도. 신선하다는 새로운 경험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낯선 어두움이 오히려 자신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불쾌감을 감히 지울 수가 없다.
빙글 웃고 있는 오소마츠의 표정을 머릿속에 다시 그리면서 쵸로마츠는 헝클어진 제 생각들을 먼지 가득 쌓인 구석 한 곳으로 전부 밀어버렸다.
피를 쏟았다. 두 손을 흠뻑 적실 정도의 붉은색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차마 제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겨지질 않았다. 질척한 감촉과 기분 나쁜 따뜻함. 바닥으로 추락하는 붉은색이 흐릿하게 보였다. 점점 초점을 잃어가는 눈과 함께 손이 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죽음이란 아이가 드디어 제 등에 업혀 가증스런 미소를 귀 끝까지 걸고 저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걸 어쩌지. 어떡해야 좋지. 멍한 눈으로 바닥에 떨어지는 피를 눈으로 쫓고 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흠칫, 하고 놀란다. 짜증이 섞인 토도마츠의 불평이 문 너머로 새어 들어온다. 쵸로마츠는 곧 나간다며 황급히 답하고 손에 거미줄처럼 엉켜버린 핏덩어리들을 미지근한 물로 씻어 내린다. 하얗던 개수대가 묽은 핏빛으로 가득 차 시야를 어지럽게 만든다. 손에 엉긴 피는 쉬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이 덜덜 떨린다. 밖에서 들리는 토도마츠의 독촉. 제 눈앞에 보이는 핏덩어리들. 점 하나 없는 투명한 거울에 비친 제 창백한 모습과 입에 묻은 피. 그리고 등에 업힌 죽음. 모든 것이 두려웠다.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아 쵸로마츠 형!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눈앞이 검은 색으로 깜빡이다 흐려진다. 개수대로 흐르는 물소리가 아릿하게 들린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제 주위를 둘러싼 형제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 토도마츠. 표정을 읽을 수 없게 소매로 입을 가린 쥬시마츠. 마스크를 쓰고 어두운 기색을 얼굴에 드리운 이치마츠. 토도마츠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달고 있는 카라마츠. 그리고 후드 주머니에 손을 우겨넣고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소마츠. 무슨 상황인지 쉬이 정리가 되지 않는 와중에 토도마츠가 제 핏기 없는 하얀 손을 세게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제 반대쪽 손에 꽂힌 링거. 제 손등으로 느리게 떨어지는 투명한 물방울을 바라보면서 그제야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오소마츠는 짧은 한숨을 쉬고는 병실을 나가버렸고 카라마츠는 제게 목이 다 나간 목소리로 괜찮냐며 말을 걸었다. 카라마츠는 링거가 꽂힌 제 손을 차마 온전히 담지 못하고 손가락만 겨우 붙들어 매만진다. 한계를 넘어버린 풍선 같은 눈물에 쵸로마츠는 감히 대답을 하지 못한다. 쵸로마츠는 힘없는 손을 겨우 뻗어 그의 눈에 맺힌 푸른 눈물을 닦아 내린다. 결국 카라마츠는 넘쳐흐르는 눈물을 차마 참지 못하고 수척한 볼 위로 흘려보낸다. 쥬시마츠와 이치마츠도 결국 조그마한 방울들을 눈 끝에 매단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쵸로마츠는 가슴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침대 끝에 서 있었던 오소마츠만 모습이 보이질 않아 마음 한 켠이 서러움을 느끼며 울 것 같다.
부모님이 오소마츠와 함께 병실로 돌아오셨다.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 이미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수심이 가득 드리워져 있다. 아마도 자신의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하신 거겠지. 어깨 위에 걸터앉아 거칠게 웃고 있는 죽음의 무게가 무겁다. 쵸로마츠는 마른 얼굴을 거친 손으로 쓸어내린다. 제 가느다란 어깨를 품에 안는 엄마를 보며 겨우 미소 지어 보인다. 전 괜찮아요. 별로 아프지도 않아. 너무 걱정하지 마요. 쵸로마츠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오소마츠를 제외한 모두가 또 눈물을 글썽인다. 정말 괜찮다니까. 타인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자신의 상태가 너무나도 싫었다. 더불어 자신의 등에서 떨어지질 않는 새까만 아이까지. 자신만이 웃음 짓고 있는 숙연한 분위기에서 오소마츠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지 않는다.
적적한 병실에는 쵸로마츠만 남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 형제들이 같이 있어주겠다며 우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모두 돌려보냈다. 집에서 자신이 빠진 만큼 일이나 잘하라면서. 카라마츠가 끝까지 남아있겠다고 억지 부리는 걸 결국 내일 오라는 타협 하에 겨우 보낼 수 있었다. 끝까지 병실을 기웃거리던 걸로 봐선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 같지만. 달빛이 들어오는 어두운 방에 홀로 남아 누워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지금 이 시간이라면 제 형제들이 모두 가지런히 누워 잠을 청할, 어쩌면 시끌벅적했을 한창인데. 역시 제게 침묵이란 존재는 너무나도 낯설다. 과일 체향 대신 퍼지는 무결한 소독약의 냄새도. 겹겹이 접혀 주름이 가득한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올렸다.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는 복잡한 심경에 괜한 이불을 손에 꼭 쥐었다. 제 물건이 아무것도 없는 병실에서 한 치의 안락함도 찾을 수가 없다. 제 등에 매달린 죽음이 제 귓속으로 비열한 웃음을 속삭이자 아까 전까지도 나지 않던 눈물이 괜스레 흐르기 시작한다. 죽음은 제 얼굴을 질척하게 더듬고 제 눈물은 말라버린 베개를 흠뻑 적시며 무너져 내려간다.
쵸로마츠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달빛으로 물든 눈물 아래 간신히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땐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과일을 깎으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셔 얄팍한 신음소리를 흘리자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황급히 침대로 달려온다. 무슨 일인가 쵸로마츠! 무슨 일이야 형! 답지 않은 다급한 목소리에 쵸로마츠는 햇빛을 손등으로 가린 채 옅게 웃으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닌데. 근데 웃긴다. 쵸로마츠는 손을 뻗어 쥬시마츠의 보드라운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 내렸다. 쥬시마츠는 안심한 듯 미소 지었고 카라마츠도 굳은 표정을 지우고 평소의 봐 주기 힘든 안쓰러운 표정으로 돌아간다. 쵸로마츠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카라마츠가 가져다 준 배를 포크로 집어 먹는다.
그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다음날은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왔고, 다음은 토도마츠와 카라마츠. 때론 부모님. 그리고 밤은 혼자. 이제는 죽음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것도 익숙해졌다. 물론 그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져서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오소마츠는, 안 왔냐고? 오소마츠는 정말 가끔씩 아무도 데리고 오지 않은 혼자 몸으로 병실을 찾아왔다.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쵸로마츠가 질문하면 답하는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면회 시간이 끝나면 인사도 없이 병실을 나갔다. 별 감흥이 없다. 뭐가 불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불퉁한 표정으로 심술만 부리면 이쪽도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다만 집에서 행패를 부리진 않는지 걱정이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전과 같다고 했다. 매일 av나 보고. 파칭코나 가고. 술이나 마시다가 자러 들어오고. 제일 늦게 일어나고. 아직도 바뀐 게 없다고 토도마츠는 어린 아이처럼 투덜댔다. 뭐.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 직접 보면 알겠지.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증세가 호전되면 집으로 돌아가 요양하면 된다고 하셨다. 물론 약은 계속 달고 살아야 하지만 적어도 병원에서 탈출해 제 그리움을 품에 안을 수는 있다. 쵸로마츠는 답지 않게,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토도마츠도 불쾌하지는 않은지 입을 꾹 다물고 그 쓰다듬을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다. 제 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날 이후로 병원에서 꼬박 일주일을 더 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이상하리만치 낯설었지만 익숙했다. 그리고 한 번에 우르르 나와 저를 기쁘게 맞이하는 형제들 사이에서 그토록 그리던 체향이 코끝에 맴돌아 쵸로마츠의 불안함을 지워버렸다. 물론 가장 멀리서 저를 지그시 쳐다보고만 있었지만. 어찌 보면 또 불만이 가득한 표정. 도대체 무엇이 그의 화를 돋우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쩌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쥬시마츠가 환히 웃는 얼굴로 자신의 품에 안기는 사이 오소마츠는 등을 돌리고 저 멀리로 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괜스레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지만 제게 가까이 다가와 눈물을 흘리는 형제들 때문에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들을 달래주는 것이 우선순위였으니. 점점 더 멀어지는 형의 뒷모습은 도저히 눈에서 쉬이 떠나질 않았다.
형제들은 모두 조금씩 바뀌어있었다. 어쩌면 이기적일지도 몰랐던 토도마츠조차도 쵸로마츠가 무슨 일을 하려고만 하면 늘 옆에 붙어 툴툴거리면서도 도와주었다. 쥬시마츠야 뭐. 매일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었고 이치마츠는 쵸로마츠 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쵸로마츠가 늘 하던 일을 대신 해 놓았다. 카라마츠 형이야 원래부터 말하지 않아도 동생들은 잘 챙겼으니까. 그래. 문제는 예상대로 오소마츠였다. 오소마츠는 자신이 돌아온 날부터 매일 술을 마시며 만취 상태로 늦은 밤에 돌아왔다. 아침 일찍 이면 이미 파칭코를 가버리고 없었다. 병 때문에 잠이 많아진 터라 안 그래도 보기 힘든데. 매일 망할 장남이라고 다투기 일쑤지만 그래도 제게 많은 의지가 되던 존재라 이렇게 힘들 때는 쉬이 지친다. 형의 태도에서도, 흔치 않은 접점에서도.
집으로 돌아온 지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에서야 오소마츠가 집에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이미 자신이 일어났을 때 집을 나간 상태였고. 생각해보니 말을 섞은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지금 말을 걸어도 어색하지 않을까. 쵸로마츠는 일말의 고민을 하다가 천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TV를 보고 있는 오소마츠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 기척을 느낀 오소마츠는 옆으로 누운 자세로 저를 흘끗 흘겨보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쵸로마츠는 전에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용기를 내면서 소심한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한다.
“...잘 지냈어?”
“..그냥.”
그냥. 그렇게 짧은 단어로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쉬이 수식할 수 있는 걸까, 형은. 쵸로마츠는 갑갑함을 느끼며 괜스레 제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공기가 너무 답답하다. 여기서 도대체 무슨 말을 더 이어가야만 하는 걸까. 목을 조르는 듯한 묵직한 공기에서 둘은 그저 삭막한 내용의 TV를 영혼 없이 시청하고 있다. 쵸로마츠가 잠시 머릿속으로 다음 말을 고민하는 순간 옆자리에서 오소마츠가 몸을 일으키고는 짤막한 인사도 없이 거실을 유유히 빠져나가버린다. 뭐지. 순간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냉랭하고 어두운 공기와 분위기에 걸맞지 않은 웃음소리가 자신을 더 괴롭게 만들어 마치 버려진 것 같은 슬픈 기분에 쵸로마츠는 괜히 울적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눈앞의 시야가 축축하고 흐릿해져 제 손가락조차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형이 몇 마디 한다고 해서 눈물 흘리던 인간은 아니었는데. 정작 내야할 화도 내지 못하고 슬픔에 가득 찬 눈물만 바닥으로 뚝뚝 흘린다. 슬퍼. 심장도.
유난히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쵸로마츠는 한동안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는 자리에 누워있기만 할 뿐 잠들지 못했다. 분명 저녁식사 후 약도 먹었고 낮잠도 자지 않았다. 그렇다고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다. 어찌되었든 평소라면 지금은 잠이 들고도 30분이나 지났을 시각. 제 옆의 한 자리만 제외하고 모두들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들어있다. 쵸로마츠는 한참 몸을 뒤척거리다가 결국 몸을 일으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별이 높게 뜬 밤하늘이라도 보고 싶었다. 쵸로마츠는 카라마츠가 몸조심하라며 사다 준 큰 담요를 몸에 둘둘 둘렀다. 아마도 반짝거리는 것은 따뜻한 게 없었는지 이번에는 그저 평범한 디자인의 털이 푸근해 보이는 담요였다. 뭔가 반짝이는 것이었어도 이번이라면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쵸로마츠는 피식 웃으며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드르륵.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현관문의 무거운 소리가 조용한 집안에 울려 퍼진다. 오소마츠 형인가. 쵸로마츠는 뭔가 긴장되는 것을 느끼며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곤 고민했다. 이거 내려가야 될까. 아니 그보다 내려가면서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망설이는 사이 복도에는 그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잔잔하게 울린다. 피할 새도 없이 오소마츠는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 전에 자신이 왜 피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소마츠는 후드 주머니에 손을 푹 쑤셔 넣은 채 계단을 오르다 담요를 둘둘 두르고 있는 쵸로마츠를 발견한다.
“아.. 어. 왔네.”
“...어디가냐.”
얼마 만에 듣는 목소리지. 귀에 익지 않은 목소리에 쵸로마츠는 잠시 멈칫거렸다. 오소마츠는 불만 가득한 표정도, 짜증이 한껏 나있는 구겨진 표정도 아닌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서늘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 왜 그렇게 서늘한 표정으로 남의 심장을 철저히 갈라놓는 것인지. 쵸로마츠는 제 정신이 위축되어 있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형의 저런 차가운 태도에 스스로가 이리 쉽게 기운이 빠질 리가 없다. 쵸로마츠는 한참을 우물쭈물 거리다 마땅한 변명거리를 찾아 이야기한다.
“그냥, 잠이 좀 안 와서. 바람이나 좀 쐬고 들어올까...”
“아픈데 찬바람 맞으러 나간다고? 미쳤냐?”
오소마츠는 제 흉터를 거칠게 헤집어내듯 날카로운 말을 쏟아낸다. 미쳤냐니. 걱정해주는 건 알겠는데 말이 좀 심하지 않아? 쵸로마츠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곤 담요를 손으로 꽉 쥔다. 가슴께가 강하게 눌려오듯 아프다. 피를 또 한움큼 쏟아내는 건 아닐까. 이러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계단을 다시 내려가려 담요를 제대로 둘러맨다.
“말 못 들었어?”
턱. 급하게 제 팔을 거세게 잡아오는 오소마츠의 손에 쵸로마츠는 괜스레 눈물이 맺히는 것 같다. 왜 이래. 내 마음대로 하게 좀 내버려 둬 제발. 다 마음에 안 든다. 제게 터트리는 오소마츠의 일방적인 불만도. 그리고 그 불만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침울해지기만 하는 제 기분도. 쵸로마츠는 어떻게든 팔을 뿌리쳐 내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투병으로 제 몸이 쇠약해진 탓인지 팔은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붙잡혀 파들파들 떨리기만 한다. 점점 더 아파온다.
“놔 줘. 아프잖아.”
“아픈데 어딜 가려고.”
눈물 가득 먹은 물기 어린 목소리가 곧 터질 듯 울망거리는데 오소마츠는 팔을 놔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굳은 표정으로 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픈 거 알면서 왜 이렇게 날 부서지리만치 아프게 붙잡고 있는 건데. 쵸로마츠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정말. 아픈 건 난데 왜 형이 나한테 화를 버럭 내고 말도 피하고. 전부. 왜 내 탓인 것 마냥.
“나 무서우니까 화내지 마...”
쵸로마츠는 미움 가득 받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갑자기 눈물을 팡, 터트리며 고개를 푹 떨군다. 나 무서워 형. 형한테 미움 받고 싶지 않아. 꿈속에 심심찮게 찾아오는 검은 그림자는 매일 매일 내 팔 하나를 잔인하게 잡아먹고 사라지는데 형마저 내 팔을 거세게 잡고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 나 정말 죽는다는 게 실감이 나는 것 같단 말이야. 억지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갑작스럽게 그 죽음 덩어리와 형의 표정이 겹쳐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소마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천천히 제 팔을 놓아준다. 나 정말, 픽 하고 덧없이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나 없이는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형만 덩그러니 내버려 두고 나 혼자 여기서 사라져 버리면. 형이 왜 꿈에서 생각났을까. 그건 내가 형이. 아니. 형이 나를.
쵸로마츠는 울었다. 텅 비어버린 복도에서 한참을 울었다. 형이라는 존재가 제게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형이 너무 미워서. 죽음이라는 존재가 너무 무서워서. 한참을 울었다. 그래도 제발. 검은 그림자가 형의 등까지 올라타지는 않기를. 꿈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한 몸 바쳐 간절히 바라면서. 형의 색을 다시는 입에서 터트리지 않기를 눈물 바쳐 기도하면서.
오늘 악몽이 너무나도 두려워서, 쵸로마츠는 별빛이 너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