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좋아하느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아마도 의미심장한 미소 한 줄기. 당신을 좋아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짧은 답 한 문장. 제게 나에기 마코토는 그런 사람. 남의 곤란한 일을 쉬이 지나치지 못하며 제게는 또래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스크린을 향한 애정 비슷한 것을 넘어서 단순, 하나의 인간으로 눈을 두고 있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의외로 심지 굳은 사람.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퍽 맑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만난 게 아니라면, 다른 이들보다도 더 깊은 속을 나눌 수 있는 편한 존재로 서로를 새겼을지 모르는 일인데. 너무 하얀 캔버스는 작은 손길에도 쉽게 물들어버리기 마련이에요. 당신이라는 존재를 영영 깨끗한 흰 종이로 남겨둘 수 있다면 참, 그건 행복한 일일 테지만, 절망에서 벗어나는 게 한시라도 급한 인간에게 행복이라는 가치는 당장 아사하기 직전인 사람에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앞에 두는 것만큼 쓸데없고 이기적인 일이죠. 당신을 찬란하고 맑은 물감들로 온전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건 미안하다고 생각해요. 사야카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 때와 같이 해맑게 웃는다. 당신의 속은, 저를 향한 검은 점 같은 감정 하나 없는 것이, 제 심장을 잘게 찌르는 고통이 되었다면 명백히 부정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일일거야.
왜 나를 좋아해요?
당신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니, 정정하여 자신은 당신의 그런 마음을 읽어버렸다. 좋아한다. 당신은 나를 좋아한다고 속으로 저도 모르게 되내었을 것이다. 이는 그리, 자신이 왜라는 의문을 달아야 할 만큼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마이조노 사야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는 순간만 해도, 제 머리를 시끄러이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도 넘치도록 듣고 읽을 수 있는 말은 자신을 좋아한다 말하는 누군가의 수줍은 고백 혹은 우렁찬 외침이었으니까. 초고교급 아이돌. 이 학교에 그런 재능으로 이름을 받기 전부터도, 자신을 좋아한다 말하는 건 물흐르듯 당연한 일이었는데. 사랑받는 아이. 마이조노 사야카. 누군가가 저를 형용하여 그런 말을 해준다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그렇다 동감할 것이고, 저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을지언정 속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아이돌, 자신이 손에 쥔 이 권력과도 같은 것에 실처럼 딸려오는 포상과 같은 것이니까. 제가 죽을 듯이 노력하여 쟁취한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건 분명, 이미 제 손에 단단히 그러쥔 제 것이니까. 누군가 넘보아도 함부로 줄 수 없으며, 주고 싶지 않은. 누군가 자신에게 우호적이라는 감정. 이는 분명 사랑을 받는 순간부터 헤어나올 수 없는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일 것이었고. 저도 그들 중 하나였으니.
그런데 왜 당신은 날 좋아해요? 당연스럽다고 생각한 감정이 어째서 당신에게 예외적으로 적용되어 이 말을 억눌려있던 스프링마냥 튀어오르도록 하는지. 조금만 엇나갔다간 당신에게 직접 실토해버릴 뻔했다. 서늘한 감정이 등줄기 아래로 가라앉는 것을 감내하며 사야카는 부드러운 미소를 익숙하게 지어보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데 당신이라고 해서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당신에게는 저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 심장 아래 깊이 박힌 돌처럼 생겨나 숨을 쉴 때마다 쓸데없이 걸리적거리며 저를 힘들게하는지. 자신은 더 나아가 승률이 거의 없을 위험한 도박패를 던지듯 아슬아슬한 농담조의 진실을 당신에게 또렷히 고했다. 에스퍼니까요. 그 말을 왜 했을까. 그에게 무엇을 언질하고 싶어서. 아니, 어쩌면 무엇을 듣고 싶어서.
나에기 마코토는 마이조노 사야카를 좋아한다. 확실한 사실이고 제게는 당연하다 여겨야 할 무미한 감정인데 당신이라는 존재가 제게 거슬리는 돌처럼 흐르는 물을 틀어막는다. 당신은 왜 나를 좋아해요? 설명을 좀 해 봐요. 자신을 좋아하는 여느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의문에 밤잠을 설치며 이불을 뒤척이는 일이 있었던가. 더하여 그것의 증명을 눈앞에서 해보이라 재촉한 적 있었던가. 당신은 왜? 이렇게 많은 반례들을 칠판에 빼곡이 채워 제게 풀라고 분필을 건네주는가. 좋아하는 사람을, 이용하겠다는 죄책감에서 기인했을까. 그렇다면 제가 죽이려는 사람에게는? 전혀. 한 방울의 눈물도. 그도 어찌되었던, 어떤 형태든 제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진즉 알고 있었음에도.
당신은 제 궁극적인 목표에 기꺼이 저울질할 만큼 무게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절망보다.
방을 바꿔서 잘 수 있을까요? 목소리는 사슬가지처럼 바람 불 듯 파르르 떨렸다. 그저 어려운 부탁이라 그런가보다. 당신은 제 흔들린 목소리를 그렇게 치부해주었다. 다행이야. 아팠으나 외면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데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다. 자꾸 당신에게 이는 죄책감을 품에 지려고 하지 말자. 죽는 건 당신이 아니다. 저 때문에 언젠가는 죽겠지만.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든 세상에서 저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모든 것을 회피하기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간절하지 않은가. 사야카는 제 팔 한쪽을 붙잡으며 숨을 가라앉힌다. 당신은 기꺼이 승낙했고, 이제 자신은 게획을 성공시킬 일만 남았으니까. 그래, 이제 파멸이다. 파국이다. 더 끌어안으면 더 잃는 것만 많아진다. 내가 당신을 끌어안으면 당신은 내 안에서 잃을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 왜 저를 좋아하냐고 물어볼 걸. 자신은 에스퍼라고.
피비린내가 상처를 찔렀다. 죽어가고 있는 자신에게 연민을 선물하고만 싶었다. 성공이 그르친 쓴 실패. 성공의 어머니조차도 구원해줄 수 없는. 뜨뜻한 무엇인가가 몸 안에서 전부 빠져나가는 감각은 아릿했고 꿈을 꾸는 것처럼 저를 몽롱하게 만들며 허전한 느낌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생기도록 했다. 당신의 욕실에서 자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의 방에서 시체로 발견된다라. 도화지가 때를 타버리는 건 아닐까. 이 와중에 당신의 생각이 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단 1분이라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자신은 지금 제대로 된 어떤 사고회로도 돌릴 수 없는데.
당신은 왜 날 좋아해요? 당신에게 좋아한다는 말 한 번 들어볼 걸. 왼손으로, 느릿하게 글자를 새기기 시작하며 당신을 그린다. 말했으면 어땠을까. 순수한 당신은 마음 같이 하얀 뺨을 붉히면서 곤란한 표정을 짓곤 제게 숨겼을까, 아니면 뜸을 들이다가 솔직하게 제게 고백했을까. 아니, 그전에 자신에게 정말 에스퍼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을까? 저를 질책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당신은 저를 질책할만큼 강한 사람도 아니었고 나쁜 사람도 아니라서 오히려, 저를 감싸줄지도 모르는 일 아니던가.
사실, 당신한테 고백하고 싶은 게 있어요. 사야카는 벌벌 떨리는, 이제는 감각도 남아있지 않은 손끝을 힘없이 추락시키고 저도 모르게 웃는다. 만약 내가, 만약 내가 살인에 성공해서 지금 이 차가운 타일 바닥이 아니라 당신의 옆에 서 있었다면, 당신이 내가 사람을 죽인 걸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했을까. 그걸 물어보고 싶어지기도 해요. 당신은 나를 감싸주지 않을까. 모르겠어요. 어째서인지 나에기, 당신에게는 한없이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는 무책임한 어리광까지 피어났다 혼자서 져버려요. 왜일까. 마치, 당신을 꽤 오래전부터 좋아하기라도 한 사람마냥.
우리가 만난 곳이 이런 절망의 점철이 아니었다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서로의 웃는 모습이 마냥 기대가 되고. 그런. 사실 이제 나는 잘 모르겠어요. 당신에게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죄책감인지, 사랑인지, 아픈 손가락에게 보내는 알 수 없는, 그 순수가 이용당한 것을 위한 동정인지.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제가 당신에게 놓을 수 없는 미련으로 이젠 잡지도 못하는 것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 지금 잠깐, 당신을 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서로를 알았다면, 나는 당신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의 하얀 캔버스 같은 선량함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아니, 어쩌면. 나는 당신에게 기억을 가졌던 어느 시점부터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고서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고, 사람은 항상 돌이킬 수 없을 때 후회를 하니까.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네요. 나에기 마코토. 내가 당신을 보면 눈물이 났던 까닭은, 동정도 연민도 죄책감도 비웃음도 자기연민도 아닌, 사랑의 감정 때문이었네요. 당신을 사랑해서 죄송했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 한 번 못해보고 당신의 방에서 이렇게 눈을 감아서. 나에기. 나를 왜 좋아해요? 에스퍼니까요.
진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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