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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사이코

[도쿠카무]신발 한 짝


 양말 한 짝. 젓가락 한 짝. 신부 없는 신랑. 전부 단 하나의 결함으로 제 구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들. 수많은 요소에서 짝사랑도 그 중에 속했다. 혼자서만 주변에 놓인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사랑하는. 정작 상대방은 그 열기의 티끌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잡아다 이 감정을 알아달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제 몸에 붙은 얄궂은 불이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옮겨 붙을까 차마 손을 뻗지는 못하고 소리 지르지도 못한 채 스스로만 모든 것을 태워 들어가는. 우울하고도 안타까운 감정의 집합소. 언제나 제 유영하는 감정을 철저하게 절제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 부회장 도쿠가와마저도 이런 안타까운 감정을 마음 한 켠에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자라나는 싹을 알았다면 진즉 깔끔하게 잘라버렸을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뿌리를 잡아 버린 탓에 이것이 이렇게나 달콤하고도 찌릿한 감정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 혀를 전부 행복감이라는 수상쩍은 가면을 쓴 독으로 뒤덮어버릴 것이라고는.


 가슴이 예방 주사를 맞을 때처럼 미미한 아릿함으로 고통을 느꼈을 때는 단지 오래 된 친구 사이에서 잔잔히 이는 동정심 또는 동감 따위의 가벼운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창가에 불어오는 바람에 제 몸을 펄럭이는 커튼 사이로 희끗희끗 보이는 너의 뒷모습을 곱씹고 있자면, 왜 그리도 짜증이 나는지 좀체 스스로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단지 카무로. 다른 이들보다 유독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제 소중한 친구일 뿐인데. 그런데, 숨을 단단히 조르듯 참을 수 없는 이 답답함은.


 도쿠가와는 카무로와의 사적인 만남을 가급적 줄이려 애를 썼다. 친한 친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도 학생회만의 일을 위해 이야기를 하고 인사를 나눈 다는 것은 적잖이 힘든 일이었지만. 손바닥 뒤집듯 너무나도 쉽게 바뀌어버린 제 소꿉친구의 태도에 카무로도 당황스러운 속내를 밖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도쿠가와, 어디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거야? 학생회에서 해결이 쉽게 되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라도 생긴 거야? 제 눈치를 보는 불안한 표정과 우물거리는 목소리가 유독 다른 때보다 더 생생하게 귀에 박히는 탓에 도쿠가와는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다 너 때문인데- 아니야. 문제는. 없어.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 것일 뿐. 카무로가 그 말을 완전히 믿었는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림짐작할 수 있었지만 제 힘듦의 무게도 가히 얹어 놓을 수 있는 가벼움이 아니라서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괴로움이 곧 자신의 괴로움이라는 사실도 전부 무시해 버리고.


 제 삼엄한 분위기에 카무로가 먼저 나서 제게 느긋이 말을 걸어오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짧은 단어라도 좋으니 언제나 그랬듯 제게 친숙한 말을 걸어오길 간절히 바랐으나 지금의 제 싸늘하고도 날카로운 태도로는 당연히 옷깃 하나 스쳐 지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어떤 방식으로 봐도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말을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제 감정이 까발려질까 진저리치듯 도망치는 이 행위는 이기적이고도 위선적이었다. 학생회라는 공정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 사사로운 감정에 번잡하게 휘말려 무엇이 우선인지 쉬이 결정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손가락질 받아 마땅했다. 도쿠가와는 차라리 제 감정이 하늘 아래 모두 쏟아 내려져서 이를 알아버린 이름 모를 누군가가 비겁한 자신을 실컷 욕해주기를 원했다.


 불쌍한 카무로. 순식간에 냉랭해진 제 친구의 싸늘한 태도에 그는 스스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늘상 고민 아닌 고민을 하며 괴로운 학생회 시간을 보냈다. 도대체 도쿠가와는 내게 왜 화가 나 있는 것인가. 중요한 일처리를 불분명하게 한 건가? 어딘가 심기에 거슬리는 말을 무의식중에 뱉어버린 건가? 며칠 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몇 되지 않는 친구들 중 가장 편하게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아이인데 지금은 가장 말 걸기 힘들어진 존재. 어떤 말을 해도 자신이 잘못했다 느껴지는 것이면 직접 말을 해주던 현명한 친구였기에 말이라는 도구가 이렇게나 꼬여버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도쿠가와? 차라리 내가 하는 행동이 이제는 보기도 싫고 가까이 하기도 싫다면 그냥 내가 싫다고, 명료하게 한 마디만 해 주면 안 되는 걸까? 네가 늘 그랬듯이.


 비어있는 틈을 찾아 조금이라도 손을 뻗어보려고 하면 또 언제 제 기척을 알아챘는지 고슴도치마냥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다 저를 경계하는 태도에 점점 조금씩, 얼음장 같은 바다 한복판에 서서히 침식하듯 감정은 느릿하게 지쳐갔다. 물에 한 번 빠져버리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서 지상으로 손을 뻗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데.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일인데. 제 앞에 벌어진 침울한 일에 카무로는 두 눈을 손에 담고 무기력하게 푹, 감을 수밖에 없었다. 심해 속 잡아먹을 어둠 속에 갇혀버린 것 마냥.


 둘의 사이는 크레바스 마냥 쩍쩍 갈라져 가까워지기는 커녕 접근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아무렇지 않은 척, 도쿠가와가 손을 내밀기에도 늦었다. 카무로는 귀를 닫고 등을 돌린 채 주저앉았고 저는 그 냥을 뒤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도쿠가와도 다시 등을 돌리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좋아한다고 해서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용기가 단 1g이라도 존재했다면 이미 다가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먹한 상태로 시간은 흘러서 학기 중 가장 바쁜 축제가 돌아왔다. 어색한 관계를 개선해 볼 시간은커녕 축제와 관련되어 있는 학교의 일을 분주히 처리하고 남아있는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더군다나 수험생. 고입시험도 준비해야 하는 처지여서 본인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시기였다. 소소한 감정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예외로 아직 온전히 연소되지 않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따금 제 혼자 불타올라서 잠이 들 만한 어두운 밤마다 제 가슴을 까맣게 태우고 가는 통에 눈살이 찌푸려지도록 아팠다. 두 팔로 눈을 가리고 어서 일초라도 빨리 잠들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아무리 흘려도 불은 꺼지질 않고 점점 더 광활하게 번져만 갔다. 잔인하고 비통했다. 나는 왜 너에게 쉬이 다가가지 못할까. 차라리 예전처럼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 일일까. 고백도 못할지언정 닥치고 그 관계를 이어나갈 것을. 하지만 괴로웠다. 그대의 얼굴을 보는 것은. 당장 목을 매고 죽으라도 해도 죽을 정도로 괴로웠단 말이다. 도쿠가와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오래 보는 방법은 고백하지 않는 것이라 하지만 이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하지만 말할 자신은 없다. 결국 멈추지 않는 굴레는 계속된다.


 너의 고민을 들어 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단단히 착각했다. 착각은 진실이 아니므로 죽기 십상이다. 제 착각도 마찬가지로 모든 학생들이 즐거움을 만끽하던 축제날에 힘없이 죽어버렸다. 카무로가 고백을 받았다. 제 고민을 늘 들어주었다던 수줍고 착한 소녀에게서. 이 이야기를 난 왜 리츠에게서 들어야 하는가. 고백과 더불어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안 사람이 자신이 아닌 제삼자라는 사실이 제 뒤통수를 망치로 후들기고 지나간다.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 카무로? 너에게 원망조의 목소리를 쏟아낼 수도 없다. 그야, 너는 이제 나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머나먼 위치의 옛 친구. 도쿠가와는 그 자리에서 비틀거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풀처럼. 카무로는 제 눈앞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아이와 저 너머로 걸어가고 있다. 나를, 두고.


 결말이 내렸다.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릿속이 엉망이다. 카무로라는 존재가 전부 헤집어 놓았다. 이 머리를 정리하기 전까진 푹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내가 너와 친하지 않은 머나먼 사이였다면 덜 아팠을까. 사랑에만 매달려 그냥 한 번 시원하게 우는 것으로 이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을까. 지나간 옛 사랑이라 가볍게 넘길 수 있었을까. 카무로. 이제 제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친구도, 사랑도. 얄팍한 감정도. 아. 한 가지는 남았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제 짝사랑.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짝사랑. 도쿠가와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알약 하나를 삼킨다. 자고 일어나면 짝사랑도, 괴로웠던 오늘날의 기억도 전부 지워지길.


 꿈에서 신발 한 짝을 잃었다. 네가 내 신발 한 짝을 들고 있었다. 저 멀리 가버렸다. 나는 신발 한 짝이 없어서 걸을 수가 없는데 너는 혼자서 저 멀리. 신발은 한 짝만 있어서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똑똑한 카무로. 너는 그 사실을 알 텐데. 왜 너 혼자서 내 신발을 가지고 저 멀리로 가 버리는 거지.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도쿠가와는 어느덧 피가 철철 흐르는 발을 한 발자국 옮긴다. 제 앞으로 생겨버린 물웅덩이에 깊이 빠진다. 풍덩. 손을 휘적이지도 않는다. 숨을 쉬지도 않는다. 눈을 감는다. 너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눈앞은 제 기포뿐이다.


 신발 한 짝은 아무 쓸모도 없다. 제 짝사랑도 그렇다.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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