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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사이코

[리츠모브]1123


 형은 내 세계의 기본이었다. 형이 태어나면서 구축해놓았던 경이로운 세계에 아무런 관계가 없던 나는 외부인의 자격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고 그 환상적인 세계를 내 눈에 들여놓은 이상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발걸음을 다시 돌려 나갈 생각은 정녕 하지 못했다. 매혹적인 향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형이 세운 그 모든 것들을 간접적으로 맛보았다. 선악과를 먹은 것 마냥, 금기에 손 댄 듯 달콤한 순간. 혀가 아릿할 정도로 달콤한 그 맛이 나는 몸서리칠 정도로 좋았다. 물론, 눈을 뜨고 난 뒤에 깨달은 혀를 마비시킬 정도로 썼다.


 이곳에 내 것은 없다. 전부 잘난 형이 만들어 놓은 형체일 뿐. 나는 그것에 쉬이 손대며 이것이 전부 내 것 이기라도 한 듯 기고만장해 있어 주위를 둘러볼 수 없었다. 맞아. 여긴, 형의 세상이지. 홀쭉하게 씨만 남은 선악과가 더러운 흙 위로 뒹굴어 점점 갈색으로 썩어 들어간다. 선악과를 먹어버린 이상 나는 에덴동산에서 머물러 있을 자격이 없다.


 그래. 그동안 고마웠어. 착하고 상냥한 나의 형. 이제 내가 세상을 세울 차례구나. 이 세상보다 더 크고 화려한 곳을 지어 첫 손님으로 그대를 초대할 테니 꼭 부름에 답해주길. 거짓을 속삭인 간사한 뱀이 배로 바닥을 기어가는 것을 보며 선악과가 한 번 더 먹고 싶다는 어두운 생각을 했다.


*


 “형!”


 제 동생의 목소리에 모브는 문을 열던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제 자랑스러운 동생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제 앞까지 걸음을 한다. 오늘은 일찍 안 나갔네, 라는 모브의 물음에 리츠는 밝은 목소리로 답한다. 오늘은 학생회 회의가 없어서 말이야. 리츠는 가지런히 정리 된 신발에 발을 집어넣고 가방을 다시 정갈하게 매며 말했다. 같이 가자, 형. 모브는 고개를 끄덕인다.

제 하나뿐인 동생은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신과 너무나도 다르게 뛰어난 점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자랑스럽게도 모두의 선망을 받는 존재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감히 리츠의 형이란 호칭을 달고 다녀도 괜찮은지 걱정할 정도로 그는 뛰어났다. 학생회도, 공부도, 운동도, 전부 놓치지 않은 완벽한 인간. 모브는 때때로 인기 많은 리츠가 부러웠다. 초능력 같은 걸 가지고 있어도 나는 인기 하나 없는 걸. 모브는 허전한 마음으로 제 핏기 없어 새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요즘은 고민 같은 거 없어. 형?”


 게다가 이젠 리츠도 자유롭게 초능력을 쓸 줄 안다. 축하할 일이었고 제 동생이 그토록 바라던 일이 결국 이루어져 기뻤다. 모브에게는 질투라는 감정이 뿌리 잡힐 자리가 없었기에 모든 것을 가진 리츠가 밉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부러울망정 어설픈 질투는 나지 않았다. 형보다 더 듬직한 형 같은 리츠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진실로, 기뻤다.

 

 “응. 없어. 늘 걱정해줘서 고마워. 리츠.”


 제 답에 리츠는 살며시 미소를 띤다. 뭘. 형제 사이에 이 정도는 당연히 서로 도와야 할 일이잖아.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모브는 그것이 단 한 번도 입에 발린 흔해빠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휘어진 눈과 온기를 가진 입술이 참 자신과는 다르게 곧다고. 응.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있어?”


 모브가 눈을 흐릿하게 깜빡인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 의 친하다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범위로 잡아야 친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약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제 머리칼을 쓸고 지나가면서 모브는 어찌 정의를 내려야 좋을지 쉬이 결정 내리지 못한다. 결국 돌아간 답은 잘 모르겠어, 라는 애매하고도 어중간한 이야기. 대답을 한참이나 기다리던 리츠는 그런가, 하고 그저 빙긋이 웃어주었다.


 마지막 질문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보잘 것 없는 형에게 꼼꼼히 신경을 써주는 동생이, 유달리 커 보였다.


*

 

 여느 해와 다름없이 아침에 학교에 도착해 열어 본 사물함은 제 물건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매년 반복해온 같은 일상이지만 한 번씩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에쿠보도 그런 제 울적해진 기분을 아는지 아무 말 없이 공기 중을 둥둥 떠다니기만 한다.


 발렌타인데이는 역시 제게 거리가 먼 날이었다. 지금까지 제게 초콜릿을 준 사람은 부모님이나 리츠, 가끔씩 스승님이었던가. 서로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딱딱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좀 고역이기는 했지만 이것도 몇 년을 반복하다 보면 아무렇지 않아졌다. 정말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니까. 리츠가 준 초콜릿, 있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리츠는 오늘도 많이 받았겠다. 초콜릿. 초등학생 때부터 매해 발렌타인이나 각종 기념일만 되면 리츠는 곤란한 표정으로 선물 받은 것들을 한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더불어 귀여운 하트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정갈한 글씨체의 편지 더미들도 함께. 대단하다, 리츠. 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면 리츠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단한 거 아니야, 형. 이라며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곤 했다. 하지만 정말 대단한 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 있다는 건.


 모브는 들뜬 아이들 사이로 풍기는 달콤한 냄새에 갑자기 초콜릿이 먹고 싶은 욕구가 도는 것을 알아챈다. 리츠가 준 거, 한 번 먹어볼까. 아침 일찍 받아 챙겨 둔 초콜릿을 책상에 밀어 넣어 놓았던 것을 기억하며 모브는 손을 책상 안으로 넣는다. 둔탁한 박스 하나와 함께, 낯선 감촉이 손끝에 퍼진다. 얇고, 보드라운 감촉이. 모브는 조심스럽게 손끝에 닿은 물건을 꺼내든다. 언젠가 보았던 리츠의 것과 비슷한 하트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져 있는 하얀 봉투의 깨끗한 편지가 제 눈으로 들어온다. 겉에는 작은 글씨로 카게야마 군에게, 라 써져 있다.


 “러브레터구만.”


 제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에쿠보가 가까이 다가와 편지를 살피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시게오, 잘 됐네! 러브레터라니. 휘파람을 불어가며 자신이 더 신이 나 에쿠보는 어서 제게 읽어보라 재촉한다. 재촉하지 마. 에쿠보. 리츠한테 줄 걸 나한테 잘못 줬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별 기대는 하고 싶지 않지만, 혹시나. 시게오는 조금은 긴장되는 손으로 하트 스티커를 봉투에서 떼어낸다. 톡, 스티커는 쉽게 떨어져 나가 제게 입구를 열어준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카게야마 군. 그러니까 시게오 군. 예전부터 좋아하고 있어요. 오늘 발렌타인데이니까 이 기회를 빌어서 이렇게 고백해 봐요. 초콜릿 주고 싶은데 괜찮다면, 점심시간에 뒤뜰로 나와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시게오 군. 시게오라고 했다. 카게야마 리츠가 아닌 시게오. 모브는 누군가 볼세라 황급히 편지를 책상 안으로 집어넣고 쿵쿵 거리는 심장 소리를 숨기느라 책상 위에 엎드려 버렸다. 초콜릿을 먹기로 했던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모브는 눈을 꼭 감고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점심 시간. 그 단어만 머릿속에서 계속 되뇌었다.


*


 점심시간이 되었다. 어쩌지, 라고 생각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발걸음은 순조롭게 뒤뜰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빠르게 뛰었지만. 제게 편지를 준 아이는 과연 누구일까. 이름은 사쿠라, 라고 했다. 사쿠라. 벚꽃이구나. 입술 안에서 모습도 모르는 그 아이의 이름을 한참이나 되새기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동글동글한 글씨처럼 귀여운 아이일까. 깔끔한 하얀 편지 봉투처럼 조용한 아이일까. 침묵만 흐르는 뒤뜰에 도착해 모브는 아직은 추운 날씨 탓에 새싹도 제대로 피지 못한 꽃 주위의 담에 앉아 아이를 기다렸다. 아직, 안 왔나 봐. 두근거림에 따뜻해진 심장으로 저를 감싸는 한기를 참아내면서 모브는 배시시 웃었다. 신기, 하다. 제가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두근거림에 기분은 점점 높이 올라가기만 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손가락이 추위에 굳을 때까지도 아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곧 오겠지, 라는 생각을 하길 수십 번. 어느덧 점심시간이 곧 끝난다는 예비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교실로 우르르, 몰려가는 발걸음 소리만 들린다. 시게오. 그냥 들어가자. 에쿠보도 혹여나 상처가 될까 조심스럽게 모브에게 권유하듯 말한다. 아까 그렇게 들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모브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이야기한다. 아직 점심시간이잖아. 웃는 얼굴로 말하는데 왜 그리 슬퍼 보이는지. 에쿠보는 속으로 미련곰탱이라며 시게오와 아직까지 찾아오지 않은 여자아이에게 버럭 화를 냈다.


 시게오는 재채기를 했다. 종이 치는 순간까지도 아이는,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시게오는 단단히 감기에 걸렸다. 그날, 추운 날씨 속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바깥에서 보낸 탓이었을 것이다. 목은 찢어질 듯 아팠고 코는 단단히 막혀서 목소리를 이상하게 만들었고 열은 적지 않게 펄펄 끓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리츠는 상태 이상이 되어버린 저를 걱정하며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간호를 자처해서 제 옆에 앉아 이야기를 해주거나 약을 먹는 걸 도와주었고 때로는 밤늦게까지 옆에서 이야기를 하다 같이 잠들기도 했다. 모브는 당연히 그런 리츠가 고마웠다. 학생회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하는 일이 휴식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아픈 저를 돌봐주는 일이라니. 혼자서 할 수 있어. 리츠. 쉬어버린 목소리로 쥐어짜듯 이야기하면 리츠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형. 아플 때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게 제일 좋아. 라며 저를 다시 눕히곤 간호를 재개했다. 너무 미안했지만, 리츠는 오히려 저를 간호하며 즐겁다 이야기 했다. 형한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아.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형. 언제나와 같이 빙긋이 웃는 그 미소가 좋아서 모브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리츠. 늘 이렇게 도와줘서. 리츠가 내 동생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제 칭찬에 리츠는 멋쩍은 듯 붉어진 얼굴로 고개만 숙였다.


 아 그러고 보니. 리츠에게 털어놓고 싶은 고민이 있었다. 모브는 기침을 몇 번 하다 리츠의 이름을 부른다.


 “사실 리츠.”


 모브는 한결 나아진 목소리로 발렌타인데이에 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 놓았다.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그냥 장난이었던 걸까? 사실 이런 게 처음이라서 나는 잘, 모르겠어. 그 아이가 내게 편지를 준 이유도. 편지를 주고 나오지 않은 이유도. 부끄러워서 그런 걸까?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흘리는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리츠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낮게 깔린 목소리로 화내듯, 하지만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이야기해준다. 형. 그게 왜 형이 잘못한 거야? 형은 그 아이랑 했던 약속을 지키러 나간 것뿐이잖아. 그 아이가 형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을 뿐이야. 무엇보다도 사람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건, 용서 받지 못할 행동이야. 그런 아이는 그냥 잊어버려. 편지도, 버려. 볼 때마다 불쾌할 테니까. 리츠의 서늘한 분위기에 모브는 잠시 호흡을 멈추고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리츠. 역시 강단 있네. 그렇게 하도록 할게. 위로해 줘서 고마워. 편지도, 버려. 볼게. 응. 리츠는 제 대답에 다시 미소를 되찾는다. 형. 형이 기분 좋아졌으면 좋겠어. 아, 이제 얼른 약 먹고 자자. 형. 벌써 잘 시간이야.


 모브는 쓰디 쓴 알약을 좁아진 목구멍으로 간신히 삼켰다. 그 모습을 리츠는 알 수 없이 미묘한 미소를 띤 채 바라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브는, 피로함에 눈을 꼭 감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다.


*


 발렌타인이었을 것이다. 형의 사물함에 보기만 해도 혀가 굳어버릴 듯 달아빠진 초콜릿이 여덧개 들어있었던, 내 기분을 쓰레기 더미마냥 더럽게 만들었던 추악한 날이. 학생회라는 명분으로 형이 한창 꿈나라에 빠져있을 이른 시각 집에서 유유히 빠져나와 찾아낸 결과물이었다. 하얀 티 포이즌이라는, 저급하고 멍청한 놈들의 권위주의적 놀이에서 얻어 낸 형의 별명은 자연스럽게 교내로도 퍼져나갔다. 평소에는 공부도 못하고, 재미도 없는 형을 무시하던 사람들이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 태도가 완전히 돌변해 버렸다. 형은 아마도 모르겠지만-거치적거리는 것들은 전부 형의 눈에 띄기 전에 치워버렸으니까-간사한 뱀처럼 그들은 형의 발목을 휘감아 마치 친한 인간이었다는 듯. 너에게 많은 호감이 있다는 듯 비열하게 굴었다. 더러워. 리츠는 그런 모습을 보며 눈에 좋지 않다고 혀를 찼다. 형한테 들러붙어서 뭐하는 짓인지. 한낱 벌레보다도 못한 것들이. 초능력은 한낱 인기벌이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형은 제 세계의 기본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이 제 형을 기본으로 삼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허용된 사람은 저 뿐이었고 형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저 뿐이어야 했다. 주변의 성가신 것들은 전부 낭떠러지로 치워버려도 무관한 일이었다. 그치, 형? 형에게 쓸데없이 접근하는 버러지 같은 놈들은 전부 없어버려도 괜찮아. 그 녀석들은 형을 이용해 먹을 생각밖에 안하는, 제 욕심밖에 모르는 더러운 인간들이니까. 그런데 형은 너무 마음이 약해서 그런 사람들도 내버릴 수 없을 거야. 그러니, 내가 그대를 위한 세상을 만들 테니 기쁜 마음으로 초대를 받아 주길. 리츠는 제 형 주위의 모든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가기 시작했다. 그에게 잘 보이려는 저급한 무리들도, 말을 걸어보려는 호기심만 가득한 멍청한 무리들도. 그리고, 발렌타인데이에 고백하려 했던 여자아이도. 죽였다는 뜻은 아니다. 접근만 하지 못하게 했을 뿐. 리츠는 제 건설이 성공적으로 향해 가는 것에 웃음 지었다. 형. 마음에 들어? 형 주위에 아무도 없는 세계야. 나를 제외하고 당신의 편을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도 잠잠한 세계. 내가 형을 위해 만들었어. 어때? 내 초대를 받아 줄거야?


 받아주지 않아도, 내가 데려올 생각이지만. 리츠는 달빛을 머금은 형의 하얀 뺨을 내려다보며 잔잔히 웃었다. 사랑스러워. 팔을 뻗어 형의 살결을 어루만지며 웃는다. 그리고 입 맞춘다. 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축하해. 형. 제 세계에서 다른 과실과 같이 자연스럽게 열려 있는 선악과를 그대에게 내밀며 웃는다. 맛있는 과일이야. 형도, 한 입 먹어. 나도 먹었는걸. 어느덧 뱀은 자신이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제 형을 꾀어낸다. 어서, 한 입 베어 물어. 그럼 안식을 얻게 될 거야. 나와 이 생을 함께 하는.


 형. 고민, 없어? 간사한 뱀은 잠든 그대의 귀에 속삭인다.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니 안심한다. 다행이다. 형. 고민 없어서. 앞으로도 나랑 함께라면, 고민은 없을 거야.


 내 세계에 초대할게. 형. 내민 손은 혼자가 되지 않는다. 하얀 손이 제 손위로 힘없이, 겹쳐진다. 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손을 제 세계 속으로 끌어 당겨 눈을 가린다. 무서운 건 하나도 없어. 안심하고 잠들련. 제 세계를 이루는 모든 암흑들이 순식간에 눈 감는다. 모든 것이 까무룩 잠들었다. 세계는 닫혔다.


 착한 형이네. 리츠는 제 입술이 닿았던 볼을 손가락으로 쓸며 중얼인다. 제 말을 잘 듣는 착한 형. 좋은 꿈꾸길 바라. 잘 자. 내일 만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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