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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박스

[무쿠모모]교살(絞殺)

인간은 정말 싫다.


하늘색 머리칼이 바다의 물결을 따라 잔잔하게 흔들린다. 마치 고요한 태곳적의 모습을 경외하여 모방하고자 하는 듯, 죽어있는 소리들은 더없이 평화로운 파도와 포말들은 수면 위로 제 모습을 드러내려 황급히 헤매었고 제 뺨을 간지러이 훑고 지나가려 하는 물고기들은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방긋방긋 웃으며 오색빛깔을 찬란하게 비추고선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자신이 비록 죽어가는 인간의 목을 힘껏 조르고 있다 하더라도, 영원히 나를 품어줄 파란 바다에서 피를 흘리는 증오를 교살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나를 안아줄 것이니.


인간의 몸뚱아리는 갑작스레 심해 한가운데로 추락하여 제 눈앞으로 침식했다. 빛이 바다를 탐닉하여 포근한 기운을 넘실거리게 하는 온화한 날씨였고 자신을 동경하는 아이들은 제 주변을 둘러싸 그날의 파도들을 제 귀에 속삭여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신은 자신들을 미워하여 저 더러운 것을 깨끗한 바다 속으로 집어던진 것일까.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이라고. 추악한 욕심을 잘 깎인 과실처럼 숨김없이 드러내어 자신들의 피를 마시는 것은 한낱 인간들의 전유물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모모에는 눈 사이를 찌푸리며 푸른빛의 지느러미를 느릿하게 움직여 붉게 물든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 모습을 살폈고, 어쩌면 이것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긴 신이 제게 내려준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전복을 경험한다. 그래. 제 한 번의 손짓으로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사슬로 당신은 부여된 것일지 모른다고.


그리하여 끊어질 것 같은 숨을 붙잡고 약한 명줄을 단단히 붙잡은 당신의 목을 두 손으로 짓눌렀다. 어디서 흐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핏물들은 바다의 자비로 인해 흩어져 버렸고, 그탓에 당신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자신은 더 선명한 분을 드러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상한 머리꼴이나 하고 있는 이상한 인간이네. 너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다른 인간들로 인해 환부를 긁어내고 새빨간 피비린내나 흘리며 감히 바다에 발을 들인 거야. 참으로 안타까워라. 인간 주제에 감히 바다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이 아니라 더 먼 날에 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필이면 나한테 걸려서. 굴곡이 잘 드러난 당신의 목울대가 울렁이는 것이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 징그러울 정도로 선하게 느껴졌고, 그대가 빨리 죽지 않는 것을 한탄했다. 왜 이리도 끈질기게 살아있어서 죽기 직전까지도 제게 꺼림직한 감각만 선물하고 가는 것인지. 제 미간 사이의 주름은 더 깊게 패여만 가고, 손에 들어간 힘은 경직이 느껴질 정도로 더해져 제 팔이 떨리도록 한다. 죽이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리도 명줄이 길어 자신을 방해하는 것일까.


그러니 이건 변명이 아니다. 죽음이 아니라 그저 잠시 얕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뜬 당신의 색에 자신의 모습이 담기었을 때 손에 들어가 있던 힘이 풀려버린 것이 그대를 살리기 위해 행한 행위가 아니었음을. 그저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같지 않게 저를 보며 웃는 모습이 자신을 거꾸로 매다는 듯 섬뜩하게 느껴져 어쩔 수 없었다고. 마치 자신이 그대를 교살하길 바라고 있었다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태도로 제 손목을 붙잡는 당신의 손이 불에 지지는 듯 뜨거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모모에는 그렇게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 진실이었고, 때론 거짓이었다. 말하지 않았으니 거짓이 아닌 비밀일까. 당신이 숨을 내어달라며 제게 입맞추었다는 사실은 가장 가까운 해마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으니. 자신이 그토록 생을 꺼트리고 싶었던 인간과 키스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그 누가 들어도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그러니.


모모에는 절대 잊지 못할 그 인간 하나를 떠올리며 달빛 아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부터 죽이고 싶은 건 인간이 아니라, 그 인간이라고. 감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다 아래서의 호흡을 감히 훔쳐간 죄는 제 손에 죽는 것으로 치루어 마땅하다 할 수 있으리라고. 바다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도록 피 하나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목을 조르는 것으로. 이번에는 반드시 손을 놓지 않겠다고 모모에는 다짐한다. 당신은 무조건 자신으로 인해 숨통이 끊어져야 한다고.


교살. 당신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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