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쵸로]그림자 내가 죽고 나면, 형은 어떻게 살아갈 거야? 20년이라는 애매한 시간동안 죽음이라는 암울한 소재를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은 적은 없지만 죽음을 제 옆에 앉혀놓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다. 한기가 느껴지는 무릎을 조심스럽게 감싸 반쯤 감긴 무기력한 눈으로 죽음이라는 작은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면 아이는 어딘가 무섭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아닌 어둠의 지평선 너머를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다. 넌 내가 아닌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거니? 곧 너와 입을 맞출 사람은 저 허공이 아니라 나인데 말이야. 쵸로마츠는 얼어붙은 손을 느릿하게 뻗어 그 아이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뺨을 잡아 시선을 맞추려 몸을 돌린다. 가는데 외로운 길 너만이라도 나를 좀 바라봐주렴. 아니면 나는 울다 지쳐 잠이 들어 죽어버릴지도 .. 더보기 [도쿠카무]순정 -끼린님 한 문장 연성-코스모스의 꽃말은 순정 누가 시작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작은 화분이 어느 순간부터 학생회실의 외진 구석 한쪽에 아늑하게 자리를 잡곤 나약하나마 활기찬 생명을 곱게 피워내려 제 푸른 새싹을 보드라운 흙더미 위로 빠꼼히 내밀고 있었다. 어느 마음 고운 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삭막하다고 느껴지는 학생회실에 존재감이 옅은 그 식물 하나가 자신과 함께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딘가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속으로나마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도쿠가와는 새싹에게 매일 이른 아침 등교해 물을 주기 시작했다. 갈색의 보드라운 흙이 물을 한가득 머금고 촉촉하게 생기를 띠어가는 것을 보며 그는 적지 않은 뿌듯함을 느꼈다. 하루, 이틀, 사흘. 날은 멈추지 .. 더보기 [레이모브]그대의 창가에 앉은 나비와 같이 1 1. 어느덧 뜨거운 햇빛의 쨍한 소리가 날법한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는 더운 날의 오후였다. 짤랑거리는 흔치 않은 방울 소리를 아이들의 장난기 서린 웃음소리가 널리 퍼지는 골목길에 여기저기 뿌려대면서 질긴 짚으로 만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방물장수는 온갖 잡스런 물건이 가득한 보따리를 맨 끈을 어깨에 재차 둘러매었다. 날씨가 버티기 쉬운 날씨는, 아니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잦아들어가고 사람냄새가 드문 길에는 오직 또렷한 방울소리만이 짤랑짤랑 제 귀로 맴돌아 들어왔다. 그와 함께 뒷목을 간드러지게 스치는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에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깨닫는다. 어느덧 뿌리 위로 느릿하게 오르고 있는 노란빛 머리카락을 다시 무겁고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여야 하는데 며칠 전 서역 상인.. 더보기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