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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하나]석류 한 알 석류 한 알의 무게를 알고 있나요. 당신의 눈은 선명한 피를 닮아 숨길 수 없는 붉은 색이다. 탁한 어둠 하나 섞이지 않고 빛 아래에서 더욱 영롱하게 맑은, 그 누구든 한 번쯤 마주하면 당연히 매혹당해 시선을 돌리지 못할 눈. 하나는 그의 외모에 있어서는 한 번 부정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긴 하나, 길가메쉬의 눈을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는 특히나 공을 들일 만큼 그 빨간 눈을 마음에 들어 했다. 사람들을 홀리게 하는 그 눈이 잘못한 거라고. 어떻게 보면 매우 글렀다 할 수 있는, 묘한 화법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나는 제 앞에서 신화를 기록해놓은 책을 읽고 있는 길가메쉬를 바라본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아느냐. 당신을 두고 떠난 인리수복동안, 당신은 또 어떤 새롭고 흥미로운 지식을 탐하였기에... 더보기
[무쿠요우]무게 좋아해. 당신의 입에서 여태껏 나온 문장 중 가장 간단명료하면서 어떤 때보다도 제 발목을 단단하게 붙잡는 선명한 목소리다. 진한 색이 배어있는 제 눈동자는 흔들림은 없으나 묘하게 비껴난 시선을 그리며 소리 없이 굴러 당신에게서 멀어지려 잠시 애를 쓰나, 이윽고 참지 못한 채 원래 자리로 얌전하게 돌아오고야 만다. 차마 당신에게서 제 눈을 떨어트려 놓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게 손해인 것이 분명하기에, 사랑스러운 당신을 엉망인 그릇일지라도 담지 않는다는 건 아둔한 인간조차도 행하지 않을 일.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런 진솔한 고백에 망설임 하나 없이 대답할 수 있다는 뜻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에게 있어 당신이라는 존재가 감히 닿아도 좋을 법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인간이던가... 더보기
[사스사쿠]벚꽃 살을 베어낼 것 같던 강인한 겨울이 무색하게 분홍빛 벚꽃이 수줍은 듯 뺨을 붉히는 봄날은 당연하다는 듯 돌아온다. 사쿠라의 계절. 얼어붙은 몸을 꽁꽁 감싸며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봄날의 온기에 느리게 녹아내리며 웃음을 자아내는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계절. 온화하고 따스하여 겨울에게서 도망친 생명들까지도 고개를 들게 만드는 봄을 싫어하는 사람은 좀체 눈 씻고 찾아보아도 한 번 발견해본 적 없으며, 그것은 까만 겨울을 닮은 것 같은 깨진 거울 조각의 쨍한 여름 남자에게도 해당되는 신기한 이야기 중 하나였다. 어떠한 계절에 속하고 싶어하는 데에 무슨 자격이 필요하기나 하겠느냐만, 그 차분한 남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계절의 소속감 따위를 논하는 시시하고도 지루한 문장에서의 특이점을 쉬이.. 더보기